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아직 아침 저녁으로는 춥지만 이른 오후 거리를 거닐면 진열된 봄옷들이 자꾸 나를 유혹한다. 여민 옷깃을 파고들던 매서운 바람이 아닌 두꺼운 외투를 살며시 벗겨내는 따뜻한 기운의 봄바람이 조금씩 느껴진다.
어제는 조금 일찍 잠들려 했다. 전날 많이 피곤하기도 했고 친구들을 만나고 와서 그런지 마음도 많이 차분해져서 잠이 잘 올 것 같은 느낌에 불을 끄고 누웠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시계 초침 소리 외에는 고요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잠들지 못했다. 머릿속에 공허한 생각들은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럴수록 심장 박동은 점점 빨라져만 갔다. '이러면 잠들지 못하는데' 라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일어나서 음악을 틀었다. 아주 조용하고 잔잔한, 하지만 우울하지는 않은 노래들을 자장가로 골랐다. 효과가 있었는지 금새 잠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주 긴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너와 같이 몇 시간이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던 현실과는 다른, 내가 원하던 이상과는 같은 그런 꿈이었다. 역시나 두달 전 그 꿈처럼 똑같이 너는 내게 살며시 기댔고, 나는 아침이 되어 눈을 뜨고서도 한참동안이나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꿈이었다는걸. 그리고 나서 바로 든 생각은 '이제 니 꿈은 그만 꾸고 싶다' 였다. 멜로 영화를 보는게 아니었다.
그렇게 오전은 비몽사몽 간에 지나갔고 오후가 되어서야 조금 정신을 차렸다. 저녁까지 이런 저런 할 일들을 하고 또 밤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심장 박동은 여전히 빨라진 채 그대로였고, 오늘도 역시 일찍 잠들 것만 같은 컨디션이었지만 아직 눕지 못하고 있다.
난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걸까. 상처받는 것?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런 슬픔 감정에 빠져드는 타입이 아닌가. 오히려 슬픔을 즐길지도 모른다. 정말 두려워하는건 아마 '어색해지는 것'일거다. 다른건 몰라도 그것 만큼은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일부러 퉁명스럽게 건네는 인사조차, 가끔씩 마주치는 시선조차, 멀리서 바라보는 너의 미소조차 빼앗긴다면 그 선택을 평생 후회할 것만 같아서. 그게 나는 두려운가 보다.
어제는 봄옷을 조금 샀다. 이번 겨울 내 입었던 두꺼운 외투가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졌다. 3월부터는 그 외투를 입지 않을 생각인데 지나고 보니 그렇게 무거운걸 어떻게 입고 다녔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봄이고, 개강이고, 새로운 시작이다.
어떤 식으로 끝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다가서지도 못하고 물러서지도 못하고 생각만 자꾸 많아진다. 너를 가운데 두고 그 주변을 일정한 거리를 둔채 빙글빙글 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길게 끌고 갈 자신이 없다. 가능하면 조만간 매듭을 짓고 싶다.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하고 있다. 너를 좋아하는데에.
아... 글구 보니깐 저번에 봤을때 네가 칼링컵 결승 한다고 해서 나도 덩달아 결승 보고 잤다;ㅁ;
전반전은 재밌던데 존 테리 실려나가고 아데바요르 오바해서 패싸움 하고 후반 완전히 난리더구만. 간만에 새벽에 한번 봤더니 가는 날이 장 날이라고;;;;
웃기는게 새벽 4시에 밀란 경기도 중계한다고 했는데 칼링컵 봤더니 피곤해서 밀란은 나중에 경기결과나 봐야지 하고 그냥 잤다는 거 ㅡ. ㅡ;;
하루가 저물어간다는건 참으로 오묘하다.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고, 내가 살아있었던 8천 7백여일동안 매일 그래왔지만, 오늘도 또 하루가 저물었다. 아니, 어제.
그렇게 사람들은 매일 '끝'을 맞이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함에 있어서도 그저 피곤한 another working day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시작과 끝에 대한 그 어떤 감사함이나 두려움도 없이 말이다.
시작은 쉬웠다. 아니 미치도록 힘들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았다면 오히려 별로 힘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아예 뛰어들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몰랐던 나는 순진하게 뛰어들었고 그런 시작은 나를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저 마네킹은 우아한 자세로 나를 바라보고 있지만 (혹은 그렇게 내가 믿고 있지만) 나를 가로막는건 선명하게도 붉은 신호등과 나를 듣이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5톤 트럭이다. 너무나도 분명한 싸인이다. Stop.
촬영한 시각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사진을 본다면 둘 중에 하나다. 이른 아침 혹은 이른 저녁. 여명 혹은 노을. 시작 혹은 끝. 아이러니하게도 그 둘은 너무나 닮아 있고 특히 나같이 사진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혼동시키기 쉽다. 사실 위 사진은 저녁 무렵 찍은 사진이므로 '혹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하는게 아닐까?'라는 기대는 100% 바보같은 짓이다.
하지만 언젠가,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이 있는 여명을
희망이 없고 절망감 가득한 '끝'의 싸인이라고 내가 잘못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평생 다시 갖지 못할 단 한번의 기회를 날려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시작'에 대한 기대를 어리석게도 하고 있나보다.
중요한 건 "냉정과 열정" 사이가 아닐까? 인간은 실패보다도 실패에서 얻는 좌절감을 두려워해. 주위의 냉정해질 시선들도 두려워하게 되고. 그걸 극복할 용기와 자신감이 생기면 위의 말은 언제나 성립할거야. 실패를 좌절감이나 아픔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의 실패로 깨끗이 인정할 수 있는 냉정, 그러기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열정. 언제쯤이 되어야 위의 말을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있게 할 수 있을라나. 어쨌든 좋은 말이다. 가슴 깊숙히 새겨둘 말이야.
이런 비슷한 의미의 문장은 좀 많지 않나?
내가 아는 것만 대략 5개는 되겠는데?? 이 말보단 이 에피소드가 이 한문장의 말을 하기 위해서 풀어놓는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일 거 같다. 나한텐 이 문장은 그냥 식상해~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차라리 실패하는데 낫다는 말...
앤드류 매튜스, 에릭 프롬... 생각해보니 '하루키'도 비슷한 문장을 쓴적이 있었지.
젤 맘에 드는건 다케다 신겐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실패는 거친 오르막이지만 무사안일은 미끄러운 내리막이다."
어때? 표현은 약간씩 다르지만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비슷하지?
사람이 다 달라 보여도 생각이 비슷하다보니 수년전에도, 수백년 전에도 이런 말 한 사람들이 꾸준히 있었던 거 같다ㅋㅋㅋ 인간이 아무리 발전하고 기술적 진보를 거듭 한다고 해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하다는 거겠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