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웠던걸까? 낯선 곳에서의 첫 하루가.
갑자기 가족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했다.
대화의 내용은 별 볼일 없는 것들이었지만
목소리만으로도 힘이 됐다.

만약에 내가 유학을 갔더라면
과연 혼자서 몇 년이나 생활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화가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걸 깨달았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동영상 촬영이 되는 똑딱이 디카를 살까 고민하다가
최대한 경비를 아끼자는 생각에 포기했었는데
이 사람을 만난 순간 그 선택을 200% 후회했다.

신주쿠 어딘가에서 마이크와 작은 스피커만으로
반주도 없이 노래를 부르던 어느 여자분.
물론 제목도 모르고 지금은 그 노래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오묘한 느낌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많이 다르지만 아야카(絢香) 앨범의 이 노래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노래가 끝났을 때 나를 포함해서 발걸음을 멈춘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물론 3천엔 정도 하는 어떤 물건을 팔기 위한 공연이었지만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나는 노래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호소하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 때문이었던 것 같다.

노래를 한 두 곡 더 할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그냥 그 자리를 떠났다.
팔려고 내놓은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기는 그녀의 모습이
이번 여행의 첫 추억을 가려버리기 전에..




드디어 도착한 도쿄도청!!
모든 여행책에 필수코스로 등록되어 있는 곳이기에 많이 기대했었는데
근처가 모두 빌딩가인데다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도청 주변은 바람만 불고 휑했다;;

그래도 좋았던 건 멋진 도쿄 야경을 공짜(!)로 볼 수 있었다는 것.
'죄송합니다. 사진 부탁합니다' 한 마디 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_-;
어려보이는 커플에게 부탁해서 겨우 한 장 찍었다.

사진이 생각만큼 잘 나오진 않았음;
(잘나온 도쿄 야경 사진은 이튿날 도쿄타워에서!)




도쿄도청에서 꽤나 오래 있었던 것 같다.
내려오니 깊은 밤이 되어 있었고
오가는 차도, 사람도 눈에 띄게 줄었다.

오늘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신주쿠만 돌아다니기로 정하고서는
다시 신주쿠역 쪽으로 향했다.




신주쿠역 부근의 사잔테레스(Southern Terrace)를 지나 계속 걸었다.
몇 시간 동안 걸었더니 앉아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커피샾 마다 가득찬 사람들을 보고 바로 포기해 버렸다.
크리스피크림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우리나라랑 별반 다르지 않더라;




사잔테라스에서 시계탑 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꺾으면 바로 타임스퀘어와 도큐한즈가 보인다.
도쿄에는 도큐한즈처럼 '잡화점' 개념의 가게가 많았고 물론 백화점도 많았다.
도큐한즈에 잠깐 들어갔었는데 문을 닫는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선 그냥 나왔다.
참, 한국어로도 방송이 나오는게 신기했다.

저 다리에서 우여곡절이 조금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다가
3번인가 거절당했다;;
어둑어둑한데서 갑자기 말을 거니까 그냥 잡상인이라고 생각했었나보다.
별일 아니지만.. 그래도 무시당하니까 기분이 좋진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낯선 사람을 이렇게 대했던가?' 하고 잠깐 생각해봤다.



밤도 깊었고 다리도 아프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고 터벅터벅 다시 북쪽을 향해 걸어갔다.
여전회 왼쪽으로 다니는 차들이 적응 안됐지만
밤 10시의 신주쿠의 모습은 명동이나 강남의 모습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그리고 그런 닮은꼴 속에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어떤 낯설음 같은게 느껴졌다.
아마 첫 해외여행의 첫날밤이라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시 가부키쵸 근처까지 왔을 때 2층 창가에 자리가 있는 까페를 발견했다.
아직 10시 전이니까.. 잠깐 들렀다 가기로 하고 들어갔다.

어눌한 일본어를 쓰기 보단 일단 영어를 써서 내가 외국인이라는걸 각인시켜주는게
서로 커뮤니케이션 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다.
물론 가게 점원도 영어가 짧았지만 서로 대화하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면서 '세컨 플로어'라는 단어 대신에 '니카이' 같은 일본어를 섞어주니까
대화를 훨씬 부드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
대화를 요약해보면...
'아이스티 달라' '스모킹?' '노 스모킹' '1층에 앉으세요' '2층은?' '2층은 스모킹' '괜찮다 2층으로 가겠다'

2층 창가에 앉아 뭇 여성들의 담배 연기를 함께 마시며-_-;
그날 하루를 정리했다.
수첩을 꺼내 놓고 한참동안이나 내 생각들을 적었다.
지금 읽어보면 약간 우울하고 어두운 느낌이 나는데
그때까지는 아직 쓸쓸하고 외로웠었나 보다.

숙소로 돌아와 바로 잤어야 했는데
TV를 보다가 새벽 2시쯤 잠이 들었다.
일본 쇼프로가 어찌나 재밌던지;;
9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잠이 들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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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프리니 2008/10/21 09:48 Address Modify/Delete Reply

    도쿄도청 야경을 봤구나.
    나는 저번에 갔을 때는 관람대 시간을 놓치고
    이번에는 기껏 시간은 맞췄는데 비가와서 아무것도 안보여서 에잇! 버럭!!! 이라는 기분이었어.;

    근데 신주쿠 관광객의 기본인 LOVE가 없군. ㅇㅅㅇ!!!

    • zzun 2008/10/21 13:12 Address Modify/Delete

      아마도 주말에 갔었나보네..
      주말보다 평일에 더 늦게까지 들여보내주는 것 같더라고.
      지금은 사실 도쿄타워에서 본 야경 때문에
      도쿄도청의 야경 따위는 기억에 없어;;

      LOVE에서 찍은 사진이 없는건...
      여행계획을 발로 했기 때문에 -0-; 사전조사가 부족했지.
      전차남에서 봤던 LOVE가 어디 붙어있는지 몰라서 못갔어
      신주쿠에 있던거였구나 ㅠ.ㅠ

  2. BlogIcon 야생기린 2008/10/22 06:33 Address Modify/Delete Reply

    밤늦은 시간까지 즐거이 다니셨군요.

    사진찍는게 거절당한건 어쩐지.. 여행객 냄새가 안나서 그럴지도요. 현지인같아요. 쿄쿄

    저는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더니 -_-); 아주 그냥 대놓고 '외국인인데 관광중;' 느낌이었달까;;;



    역시 혼자 다니는 여행엔 삼각대 필수 -_-)v


    노래하는 언니 멋진데요;

    전 노래하는 오빠들만 열심히 보고 왔더라는 >_<

    • zzun 2008/10/24 11:18 Address Modify/Delete

      아직 첫 날이라 덜한건데,
      뒤로 갈수록 외모가 점점 현지화 된답니다.
      사진찍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나름 재밌었어요 ㅋㅋ

      저 분 노래 제목이라도 알고 싶었는데
      가사를 잘 못알아들어서-_-; 검색도 못하고
      다음엔 꼭 동영상 촬영을 해와야겠어요~

  3. 소림 2008/11/23 12:52 Address Modify/Delete Reply

    쭌~
    왜 이렇게 사진이며 글이며 다 외로움이 풀풀 날리는게야?

    • zzun 2008/11/26 13:58 Address Modify/Delete

      첫째날은 그랬다. 외로웠다.
      그날 수첩에 썼던 글은 이 글보다 심하게 더 우울한데
      차마 올리진 못하겠다 ㅎㅎ


우리나라의 지하철역은 대부분 여러 개의 출입구로 연결된 지하의 넓은 공간일 뿐이지만
일본의 전철역은 '역사(驛舍)'라고 부를 수 있는 건물이 있는 경우가 많다.
신오쿠보역도 꽤 오래된 듯한 건물과 2층 높이의 플랫폼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여행객의 눈에는 신기하고 분위기 있게 느껴졌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낡고 지루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렌즈에 예쁘게 들어와 준 푸른 하늘이 고마웠다.



신오쿠보 부근은 유명한 한인촌으로 2차 대전 이후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사실 나의 좁은 식견(혹은 편견)에 의하면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은 대체로 '일본인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들처럼 말하고, 그들처럼 행동하고, 그들처럼 생각하고...
누가 물어보지 않는 이상 그냥 일본인으로 취급받고 싶어 하는 그런 느낌이 있다.
여행객은 예외고.

처음엔 한글로 된 간판이 신기해서 두리번거리다가
내 옆을 지나가면서 한국어로 대화하는 사람들 때문에 흠칫흠칫 놀라기도 했다.
그러다 이내 적응이 되면서.. '신오쿠보에서 한국인 찾기' 놀이를 했는데
'명동에서 일본인 찾기' 만큼이나 쉬웠다. -_-;
한국인 여행객이 어찌나 많던지~



이쯤에서는 내 사진을 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머리 크게 나온 셀카 하나 올린다. -_-;

방향을 헷갈려서 동쪽으로 걷다가
지도를 보고 다시 돌아와 남쪽(신주쿠 방면)으로 내려갔는데
가는 길에 좁은 골목의 주택가를 지나면서 찍은 사진이다.
가게 간판은 물론이고 쓰레기 분리수거 안내판까지 한글이 써 있는 게 신기했다.



드디어 왔다!!! 신주쿠!!!
사실 신주쿠라는 곳이 크게 의미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냥 처음 보는 일본의 번화가니까...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다.)

기내식 이후로 아무 것도 못먹었더니 너무 배가 고팠다.
무언가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윙버스 지도에서 맛집을 찾았는데
강추 우동집이 눈에 띄었다.
십 여분 걷다보니 신주쿠 지리도 익숙해지고
우동집도 금새 찾았다.



가게 이름은 '三国一(산고쿠이치)'
당시에는 뜻을 몰랐지만 돌아와서 검색해보니 '천하제일'이라는 뜻이었다.

가게 점원과 일본에서 일본인과의 첫 대화를 가졌는데 엄청나게 긴장했었다.
혼자냐고 묻는 질문도, 5층까지 자리가 있다는 얘기도 못 알아들었다.
딱히 먹고 싶은 메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추천해달라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왜 그렇게 입이 안떨어지던지...
점원은 내가 주문하려는 줄 알고 내 옆에 한참이나 서 있다가
'정하시면 다시 불러주세요' 하고선 가버렸다;;
결국 주문할 때는 '코레, 오네가이시마스(이거 주세요)' 한 마디 했고
음식이 왔을 때는 '아리가이시마스(아리가또+오네가이시마스)'라고 말해버렸다.. ㅋㅋ

어쨌든 돈카츠미소우돈(돈까스된장우동)은 꽤 맛있었고 양도 많았다.
가격은 900엔 정도.



저녁을 먹고 나오니 신주쿠는 이미 밤이다.
가부키쵸를 지나 유명한 빅꾸카메라(Bic Camera)를 비롯해서 사쿠라야, 스튜디오 알타, 빔스를 둘러봤는데
아직 적응이 안돼서 그런지 살만한 물건은 별로 없었다.

길을 건너 '야키토리 요코쵸'로 갔다.
좁은 가게에 넥타이부대 아저씨들이 주인장을 바라보며 둘러 앉아 맥주와 간단한 음식을 먹는
일본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자주 나오는 선술집들이 늘어선 골목이었다.
잠깐 앉아볼까 하고 생각하다가 금새 접었다.
여행 첫 날이라 긴장도 덜 풀렸고.. 마음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대신 다음에 도쿄를 들렀을 때는 꼭 다시 들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서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표 중의 하나인 '도쿄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도쿄도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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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야생기린 2008/10/22 06:35 Address Modify/Delete Reply

    헙; 돈까스 우동 맛나겠는데요;

    전 -_-); 고로케우동 먹었더니 고로케가 분해되는 난감했던 일이 ;ㅁ;




    회전초밥이 젤 맛난던 것 같아요; (뭐 몇번의 실패도 물론 있었지만...)

    • zzun 2008/10/24 11:22 Address Modify/Delete

      맛있었는데 약간 느끼하고 양이 많았어요..
      그래도 배가 고팠기에 허겁지겁 먹었죠 ㅋㅋ

      저도 해산물이랑 좀 친했으면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