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나흘째 아침이 밝았다.
3일간 너무 열심히 돌아다녔다는 핑계로 조금 느지막히 일어났더니 벌써 해가 중천이다.

나보다 일정이 하루 짧은 친구는 이날 배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었고,
나는 나가사키를 다녀오는 일정을 계획했다.
(원래는 나가사키에서 1박을 할 계획이었지만 무슨 일인지 모든 숙소가 예약불가였다.)

모처럼 늦잠도 자고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나서, 이제는 내 집같이 편안한 하카타역으로 나갔다.



철도 승무원이나 역무원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가방을 메고 역에서 나오는걸 보니 퇴근하시는 듯.
우리보다 일찍 고령화 사회가 된 일본은 어딜 가나 서비스업에 종사하시는 친절한 노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일단 하카타역을 지나 요도바시 카메라를 들렀다.
사진과 동영상으로 추가메모리까지 다 써버렸기 때문에 새로 메모리를 구입했는데
큰 맘 먹고 거금 들여서 제일 큰 용량으로 사버렸다.
큰걸 사 놓으면 언젠간 쓸 일이 있겠지 하면서...

난 원래 뭐든 잘 지른다.



친구와 작별이다.

비록 떨어져 살고 있지만 힘든 군시절을 함께 했기 때문인지 정이 가는 친구다.
사고방식은 조금 독특하지만 그만큼 창의적인 재능이 많다.
언젠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질 수도 있다고 가끔 생각함.



하카타에서 나가사키로 가는 열차를 탔다.
혼자가 되니까 다소 외롭긴 해도 진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더라.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로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JR특급 카모메를 타고 가면 되는데 초반엔 좀 지루한 경치지만
1시간쯤 지나면 해변가를 따라 달리기 때문에 경치가 꽤나 좋다.




큐슈 여행을 계획하면서 하고 싶었던 두 가지.
바다가 보이는 기차 타기, 그리고 소박한 어촌 마을에서의 1박.
일정상 후자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래, 뭐든 한 번에 다 이루면 재미없지.



하카타에서 나가사키까지 타고 온 열차는 '카모메(갈매기)'다. 좀 닮았나?
일본은 변태적 성향(?)과 만화적인 순수함이 공존하는 신기한 곳이다.



나가사키역에 도착했는데 이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아줌마들이 역 앞에 줄지어있고 택시들도 잔뜩 대기중이다.
그러고보니 기차안에서도 전과 다르게 복도까지 승객이 가득 차 있었다.
토요일이라 그런가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후쿠야마 마사하루(福山雅治)'라는 69년생-_- 영화배우겸 가수가
이 날 고향인 나가사키에서 대형 콘서트가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나가사키현 주민을 대상으로 한 5만명 무료초대공연!
그러니 아줌마들이 저렇게 넘처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모든 호텔이 예약불가인 것이었다. -_-;



일단 역에서 가까운 곳부터 들렀다.
'일본26성인순교지' (참고로 본인은 천주교 날라리신자)
나가사키역에서 걸어서 갈 정도로 매우 가깝다.



외국인과 어린이를 포함해 26명이 순교한 곳.
조용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경건해졌다.





성당의 모습이나 외벽의 그림이 모두 독특하다.



난 언제나 성당의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좋다.
그리고 지역마다, 나라마다 다른 모습이면서도 공통적인 무언가가 느껴져서 더 좋다.

내가 여행을 다니면서 성당을 꼭 들르는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다.



나가사키역 주변의 상가지역.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근처에 있는 다른 성당.
잘 기억나진 않는네 아마도 '나카마치 성당'이었던듯?
성당이 있다길래 그냥 무작정 찾아갔다.
(검색해보니 이 곳도 순교 16인의 기념성당이고, 피폭 이후 재건축된 것이라고 함)




일본은 어딜가나 사찰이 많기 때문에 이 곳(후쿠사이지)도 들러봤는데
불상이 우리나라와 다르게 매우 기분 나쁜 모양으로 세워져 있어서 입구에서 바로 돌아 나왔다.



호리키타 마키, 김래원 그리고... 정찬우?

날씨가 너무 더워서 편의점에서 포카리 스웨트 비슷한 음료수를 샀는데
이건 뭐 뿌리까지 꽝꽝 얼어있다.
역시 후덥지근한 지방이라 그런지 음료수 하나를 팔아도 확실하게 판다.


이제 나가사키 시내를 통과하는 전차를 타고
나가사키 원폭투하와 관련된 장소들을 구경하러 북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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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친구를 만났다.
모스 버거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일단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숙소 예약은 친구에게 맡겼는데(피콜로 하카타(Picolo Hakata)라는 비즈니스 호텔)
나름 저렴하고 괜찮은 곳이었던 것 같다.

5일간 매일 아침 저녁으로 지났던 숙소와 기차역 사이의 길은
설레임을 안고 출발했던, 추억들을 갖고 돌아왔던 길이라 그런지
사진만으로도 애틋한 느낌이 든다.



하카타역에서 3일간 JR을 무한대로 탈 수 있는 JR패스를 교환하고
3일동안의 열차 티켓을 모두 예약했다.
전날 업무시간에 일도 안하고 미리 열차시간을 봐둔 보람을 느낀 순간.

그렇게 이미 하루의 반이 지났지만 그래도 후쿠오카 시내 정도는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일정은 내가 양보하기로 하고 우선 친구의 목적지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처음 간 곳은 대형 전자제품 매장인 요도바시 카메라 하카타점.
도쿄에서 봤을 때는 별 관심 없었는데 들어가보니 의외로(?) 구경거리가 많았다.
아무래도 5일간 카메라 메모리가 부족할 것 같아서 여기서 하나 구입했다.
두 번째 여행이라 점원과의 의사소통도 나름 순조로웠다. 훗.



다음으로 들른 곳은 북오프(BOOK OFF). 일종의 대형 중고서점 체인점이라고 볼 수 있다.
책 뿐만 아니라 각종 게임 소프트나 DVD도 중고로 팔고 있었는데
상태에 따라 다르게 가격을 매겨놓은 중고품들이 점포 가득히 있는 것을 보고선 많이 놀랐다.
중고서점이 하나 둘 사라져가는 국내 시장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하카타역 근처 하카타 교통센터에 있던 다이소(100엔샵)과 게이머즈를 구경하고 나서
텐진으로 가기 위해 100엔 버스를 타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 버스 타는 방법을 몰랐다.
탈 때 현금을 내는 우리나라 버스와는 다르게
타면서 무슨 티켓을 뽑고 내릴 때 돈을 내는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버스를 타고 나서 알았는데
타면서 뽑는 티켓은 어디서 탔는지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내릴 때는 승차한 정거장에 따라 다른 요금을 내는 것이었다.



느릿느릿 안전하게(?)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텐진에서 내렸다.
해가 지기 전에 내가 보고 싶었던 곳을 둘러보기로 하고 우선 '아크로스 후쿠오카'로 갔다.

뒤에 보이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후쿠오카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인데
아쉽게도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지나버렸는지 입구가 막혀있었다.

친구에게 사진을 부탁했는데..
외국인에게 부탁하는 것과 결과물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친구말로는 식물이 건물을 잠식하고 있는 것 같다는 후쿠오카 시청;



나는 도쿄에서와 마찬가지로 넓고 한적한 공원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평소엔 주변에 공원이 있어도 잘 가지 않으면서 말이다.
다음주에는 정말로 한 번 가볼까...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친구의 취향에는 맞지 않을 것 같아
일단 친구의 마지막 목적지인 '만다라케'를 가기로 했다.(여기도 일종의 중고서점?)

하지만 그 건물이 어디있는지 모른다기에
휴대폰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내가 갖고 있는 지도에 위치를 표시해주자
친구가 존경하는 눈빛을 보내주었다.
역시 우리나라는 IT강국.



코스프레를 위한 가발을 팔고 있는 것 같았는데
너무 괴기스러운 분위기;

참고로 친구는 NDSL 게임 개발자이면서 아마추어 만화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련 정보수집 및 개인적인 취향(?)으로 이런 곳을 갔던 것인데
나는 덕분에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었고 나름 괜찮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벌써 어둑해졌다.
작년 도쿄 여행 첫날은 너무 외롭고 고독해서 슬프기까지 했던 첫 날 저녁이었는데..
올해는 친구랑 같이 있어서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털리스 커피를 한 잔 하고 싶었지만,
일단 배가 너무 고파 뭔가 먹으러 가기로 했다.

(다음 편에 계속)

- 친구가 그린 만화 여행기 -
똥똥배의 북큐슈 여행기 -2-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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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봉이네 2009/11/01 13:27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음.... 시청이 식물에 잠식되고 있어보이는데 나도 한표~
    근데 쭌은 왜 자꾸 일본에만 가? 미국에도 좀 오지~ ㅋㅋㅋ

    • zzun 2009/11/02 19:30 Address Modify/Delete

      미국 1번 갈 비행기 티켓값으로 일본을 5번은 갈 수 있거든 -_-;
      나도 미국 가고싶다 ㅋㅋ

도쿄 여행을 다녀온지 1년.
매년 새로운 나라를 다녀오자는 다짐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또 다시 일본을 다녀오게 되었다.

후쿠오카 공항은 도쿄보다 가까워서 비행시간은 1시간도 걸리지 않았는데도
기내식이 일식 도시락으로 제공되었다.

하루 전에 만든 대강의 여행 일정은 있었지만
세부적으로 어디를 갈지는 역시나 정하지 못했었고
작년과 똑같이 비행기 안에서 윙버스 지도를 뒤적거리는 신세였다.



작년 하네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찍었던 사진이 생각나서
후쿠오카 공항을 나오자마자 또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저 당시의 생각은 오로지 하나.

'덥다...'

실제로 높은 온도와 높은 습도 때문에 숨이 막힐듯이 더웠다.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하카타역으로 왔다.
하카타역은 후쿠오카의 중심이 되는 역으로서 온갖 열차가 모두 정차하는 곳이고
덕분에 주변에 호텔도 많이 들어서 있는 큐슈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큰 가방을 메고 우르르 지나가는 걸 보니
수학여행 비슷한 걸 가는 모양인데
일본식 교복을 보니 일본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이번 여행 5일 중 3일을 동행하기로 한 친구 녀석을 기다리다가
연락이 안되길래 하카타역 주변을 한 바퀴 걸어보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작년에도 신주쿠역 주변을 방황하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했었다.



낮게 걸린 전깃줄과 철길, 한적한 도로를 보면서
도쿄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의 일본을 느꼈다.

이번 여행의 목표 중의 하나는 '한적한 일본의 어촌마을 탐방'이었는데
과연 성공했을까?



일본엔 우리나라보다 그래피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벽에다 그림을 그리면
얼마 안가서 공무원들이 출동해 지워버리겠지?

그래피티 뿐만 아니라 거리의 악사도 자주 눈에 띄는데
우리나라에서 거리의 악사는 구걸행위나 약장수로 치부되기 쉽다.

이런 아마추어적인 예술 행위들이 관심을 받고 인정을 받는다는 게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하나의 증거가 아닐까 싶다.



공사중인 하카타역.
작년에 들렀던 도쿄역도 공사중이었던 생각이 났다(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

손님도 별로 없는데 느긋하게 기다리는 택시들.



천천히 걸어서 캐널시티 근처까지 갔다.

사실 후쿠오카는 큐슈에서 가장 큰 도시이긴 하지만
도쿄에 비해서는 턱없이 작은 도시라서 볼 거리가 그리 많지 않다.
지도를 보니 대형 쇼핑몰인 캐널시티가 멀지 않길래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온다던 친구녀석은 내릴 시간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안됐다;



캐널시티를 들어가려다가 강을 발견하고 방향을 틀었다.

후쿠오카에는 서울처럼 도심 한가운데에 '하카타강'이 있다.
그 강의 양 옆에는 사진처럼 낡은 건물의 주점같은 가게가 늘어서 있었는데
이국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름만 강이지 거의 바닷물에 가깝다.



큐슈 발 디딘 기념 첫 사진을 이제서야.

아직 숙소를 들어가지 못해서 옷을 갈아입지 못했다.



강이 마음에 들어서 걷다보니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았다.
친구가 연락이 됐는데 하카타항에서 하카타역으로 걸어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게 걸어올 수 있는 거리인지 의심은 됐지만 어쨌든 나도 슬슬 하카타역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던 길에 처음 찍은 동영상.
이번 여행을 위해서 카메라도 일부러 동영상 촬영이 되는 걸로 바꿨다.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이 지금도 느껴진다;

사실 찍고 싶었던 건 곱게 화장하고 정장치마를 입은 채로
한 손에 양산을 들고 햇빛을 가리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기인 수준의 여성이었는데
워낙 빨리 지나가서 타이밍을 놓쳤다.

그리고 자전거가 어찌나 많은지 여행하는 내내 자전거를 피해다녀야 했다.



다시 돌아온 하카타역.
낡고 녹슨 신호등을 교체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었더라.



드디어 만난 친구 녀석!
그리고 본격적인 후쿠오카 공략 이야기는 다음편에 계속.

- 참고 : 아마추어 만화가 친구녀석의 만화여행기 -
똥똥배의 북큐슈 여행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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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프리니 2009/09/23 14:39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일본의 여름은 진짜 힘들지.. 고생했겠다.
    두번이나 여름에 도쿄를 갔던 나 orz는 그 마음을 알것 같아(...)
    내가 캐널씨티에 갔을 땐 겨울이어서 온통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장식되어 있어서 예뻤는데
    여름의 캐널씨티는 어땠을지 궁금하네. 여행기 기대할게~ :D

    • zzun 2009/09/24 13:15 Address Modify/Delete

      앞으론 되도록이면 여름엔 안가려고;;

      생각해보니 캐널시티는 겨울에 가는게 좋을 것 같다.
      여름의 캐널시티는... -_-;
      첫날은 주변만 돌았고 마지막날 안에 잠깐 들어갔다 나왔어 ㅎ

  2. 현호 2009/09/24 09:22 Address Modify/Delete Reply

    똥똥배라는 분의 만화 봤는 데, 거기 나오는 너의 케릭터 정말 너랑 닮았더라. 성격까지. 풋. 근데 사진찍을 때 돈내지 그랬어? 사진찍힌 사람이 구두쇠라고 했다며~

  3. BlogIcon 김정훈 2009/09/26 00:42 Address Modify/Delete Reply

    사진만 봐도.... 뭔가 뜨끈뜨끈하네 ㅋ